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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나 - Let's be new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 겹겹이 쌓인 웃음과 이야기들

본 글은 알레프 1호 <Let's be new>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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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우울한 날들이 반복되어 웃을 일이 필요하다면?

나는 주저 없이 2017년에 개봉되어 부산 국제영화제, 일본 내 박스오피스를 휩쓴 이 작품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적극 추천한다. 이번 1호 기획을 통해 좀비 영화들을 모을 때 이 작품도 역시 리스트에 포함되었는데, 이전에 다른 이들에게 재밌다는 추천만 받고 보지 않고 있다가 비로소 이번에야 보게 됐다. 결론은? 너무나도 재밌다는 것.

 

 

내가 가장 잘한 것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죄송스럽지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영화를 본 사람들만 보면 좋겠다는 것. 이 글 자체가 영화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으니까. (하지만 <맨 인 블랙>에서처럼 이 글을 읽고 나면 글 내용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영화를 처음 안 순간은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동진 평론가가 블로그에 재미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나서 보고싶은 영화 목록에 등록을 해놨던 것 같다. 그러나 포스터와 간략한 줄거리만 보면, 마치 B급 감성으로 버무려진 영화겠거니 싶었다. 내가 이 영화를 추천받았던 것은 우연히도 스페인에서였다. 당시 여행을 하던 도중 만난 동행은 영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의 ‘보고 싶어요’ 목록에 이 영화가 있다고 말하자 주저 않고 그는 “그냥 봐보세요. 정말 재밌어요.”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제야 그 말을 이해했다. 왜냐하면, 영화의 정체는 바로...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가 시작되면, 어색한 남자 좀비가 여자 주인공 앞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은 도끼를 든 채 좀비가 된 남자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곧 (더 어색한) 비명과 함께 목덜미를 물린다. 그때 들리는 ‘컷’소리. 어느새 나타난 감독은 발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다그친다. “너의 연기에는 진실이 없어!”라는 말을 여배우에게, “넌 리허설 때부터 말이 너무 많았어!”라는 말을 남배우에게 한다. 찰지게 때리는 빰은 덤이다.

 

그렇다. 그들은 버려진 공장에서 좀비 영화를 찍는 중이었다. 같은 장면을 42테이크나 찍은 여배우에게 빡친 감독을 진정시키며 3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지고, 분장 담당은 감독이 유난히 화가 난 이유가 감독이 이번 영화에 본인의 모든 것을 걸어서 그렇다고 한다.

 

 

동시에 조감독은 철제 양동이를 가지고 오며 감독의 주문으로 피를 건물 지붕에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분장감독은 풀 죽어 있는 두 배우와 함께 우스갯소리로 감독이 혹시 이 곳에 있었던 도시전설을 재현하는 것(피를 뿌리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을 의심한다. 그러나 갑자기 문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셋의 대화도 없어진다. 그러다 남배우가 분장 감독의 취미를 물어보며 어색한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요새는 호신술이 자신의 취미라며 갑자기 호신술을 시연한다. (이때부터 B급의 냄새가 슬슬 올라온다.) 그래서 이때 내가 한 생각은, 자연스러움과 - 부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배치한 예술영화인가?

 

장면이 바뀌면서 조감독은 좀비로 변한 촬영감독과 마주하고 습격을 당한다. 그리고 그의 뜯긴 팔이 건물 내부로 던져지고, 건물 안의 3명은 그게 진짜 팔 같다며 놀란다. 그도 잠시 조감독이 피를 흘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만,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진짜 죽었잖아?”라는 대사와 함께 사태의 본질을 어색하게 파악한다.

 

 

다시 살아난 조감독와 촬영감독 좀비가 이 셋을 추격할 때 감독이 어디서 돌아왔는지 카메라를 들고 이제야 진실되고 겁에 질린 여배우를 촬영한다. B급 영화 감성이란 것을 감안해도 감독의 캐릭터는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렇게 텐션이 높아지는 감독과 달리, 문 앞에서 계속 앉아있던 (문어를 닮은) 음향감독은 ‘잠시만요..’라고 나지막이 건물을 나가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다른 이들이 밖에는 좀비가 있다며 말려보지만 결국 ‘조또 마떼!!’라고 외치며 건물 밖으로 나가며 비명횡사. 그리고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감독은 그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카메라를 멈출 수 없어!”라고 외치며 역시 밖으로 나간다.

 

나는 또 골똘히 그 장면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를 찍는 영화를 찍는 영화? 이게 바로 액자식 구성, 꿈의 꿈 같은 놀라운 영화 내의 스토리 계층에 대한 이야기인가? 방금 쇼트 하나로 갑자기 B급 영화는 내 머릿속에서 예술영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좀비와의 사투, 더불어 갑자기 이성을 잃은 분장감독과의 사투로 변한다. 그녀는 좀비로 변한 음향감독의 뚝배기를 날려버리고 피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이곳을 탈출해야 된다며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피의 광기인 것인지, 좀비에 물렸을지도 모르는 여배우를 죽이려 하고, 그 셋은 건물 지붕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너무나 긴 여배우의 비명 씬이 끝나자(어색한 장면) 분장감독이 남배우에게 이마에 도끼를 맞고 쓰러진 채로 죽어있는 상태다. 여배우는 좀비에게 물렸을지도 몰라 홀로 창고에 가고, 다행히 그것이 분장인 것을 알고 다시 남자친구에게 간다. (창고에서 나올 때 어? 이곳에 도끼가 있었네,라고 말하는 장면은 재난영화의 클리셰를 B급 감성으로 저격? 하는 느낌) 하지만 이미 그도 좀비로 변했고, 그 둘의 장면은 마치 영화 시작 처음처럼 느껴진다.

 

 

감독은 또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마지막 촬영을 시작하고 그 장면 역시 3번이나 반복되며 여배우의 42테이크가 나온 이유이자, 일종의 수미 상관도 느낄 수 있다. 결국 빡친 여배우는 좀비로 변한 남배우와 감독을 도끼로 처단하고 옥상에 피로 뿌려진 ‘별’ 모양 위에 서며 영화 제목 <ONE CUT OF THE DEAD>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때의 시간은 아직 러닝타임이 40분이 돼가는 상태. 분명 90분짜리 영화였는데? 이렇게 끝난다고?

하지만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 한 번 누군가의 ‘컷’ 사인이 들리며 두 번째 시작한다.

 

 

# One Cut of the Dead

 

시간은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가고, 첫 30분에서 감독으로 나왔던 이가 등장한다. 그는 영화 감독이지만 유명하지 않아 여러 가지 부업도 뛰는 인물. 그의 캐치프라이즈는 적당히, 그리고 빨리 찍는 것. 집으로 가니, 분장감독을 맡았던 여자는 그의 였고, 다혈질이면서 아빠처럼 영화감독을 꿈꾸는 딸 ‘마오’가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족

감독은 한 좀비 채널 오픈을 맞아 30분동안 생방송으로, 그리고 ‘원 컷’으로 촬영하는 좀비 영화를 맡을 것을 제안받는데, 처음에는 거절을 하려고 하다가 주인공으로 내정된 남자배우가 딸의 최애라는 것을 알게 되고 승낙한다. 그리고 시작된 리허설, 영화에 등장했던 낯익은 얼굴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다들 영 이상하다. 여배우는 소속사에서 제한 두는 것이 많다며 곤란한 장면을 빼 달라고 부탁하고, 남배우는 대본과 대사에 자신의 철학적인 시선으로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촬영감독 역의 배우는 알코올 중독이고, 음향감독 역의 배우는 에비앙이 아니면 배탈이 나는 특이한 체질. 본래 감독 역과 분장 감독 역을 맡은 배우는 리허설에는 집중을 하지 못하고 핑크빛 기류가 흐른다.

 

영화가 과연 잘 만들어질지 걱정이 태산이지만, 결국 촬영날은 다가오고 생방송에 원 컷인만큼 실수 없이 촬영을 들어가려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촬영 당일 여러가지 문제가 겹친다. 핑크빛 기류가 흐르던 감독 역/분장 감독 역은 무언의 이유로 차를 같이 타고 촬영장까지 오다 사고를 당해 촬영에서 빠진다. 촬영이 중단될 위기에 빠지지만 촬영을 접을 수는 없기에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에 있었던 감독이 감독 자신 역을 맡고, 촬영 현장을 보고 싶다며 따라온 딸은 전직 배우였던 감독의 아내가 분장 감독 역을 맡으면 된다고 말한다.  감독 와 아내는 출연을 고사하다가 바로 다음 씬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를 외친다...

 

역할을 맡을 사람은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그와 동시에 몰래 술을 마시러 간 촬영감독 배우의 모습과, 에비앙이 아닌 다른 물을 마신 음향감독 배우의 모습을 비추며 후에 닥칠 일을 복선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며 영화의 첫 장면의 촬영장면이 시작된다. 여기서 나는 큰 아이러니와 허무함이 들었는데, 첫 40분을 감상할 때 내가 부여했던 의미들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생방송이라 애드리브를 자제해달라고 했던 감독은 여배우에게 ‘너의 연기에는 진짜가 없어!’라고 다그치고, 남배우에게는 ‘넌 리허설부터 말이 많았다.’며 뺨을 때린다. 리허설 내내 쌓여있던 감독의 무의식에 있던 솔직한 심정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던 것.

 

감독이 사라진 뒤 두 배우와 분장감독의 어색한 장면은, 실은 술에 취한 촬영감독 역의 배우가 숙취로 쓰러져 제때 투입되지 못해 시간을 끄려 했던 것이었다. 좀비 분장을 한 채 허우적거리는 몸사위는 진짜로 술에 취했기(…)때문이었고 그런 그의 팔과 다리를 감독이 지탱하고 있었다. 또한 음향감독 배우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던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물을 마셨기 때문에 똥이 마려워서… 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영화는 예술영화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짜인 각본대로 생방송 영화가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현장에 있던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텝들이 고군분투하며 영화를 끝마치는가, 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촬영 카메라를 보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고 했던 말은, 내가 짐작했던 영화 내의 사람과 영화 밖의 사람의 일치화라는 개똥 같은 분석이 아니라 자신의 감독과 연출을 맞은 이 30분짜리 원 컷 영화의 완수에 대한 사명감이 녹아들어 간 대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엔 처음 30분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장면이 이유를 찾아가며 끊임없는 웃음을 내게 주었다. 감독의 아내는 촬영을 시작하면 역에 몰입해서 본분을 잇는 일이 잦았는데, 배우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레슬링 역을 맞다가 진짜로 상대 역의 팔을 부러뜨린 탓. 때문에 좀비 영화에 심취한 그녀가 점점 진심으로 강인해지고 미쳐가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막기위해 좀비가 투입되고 그녀가 날린 발차기에 우수수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그녀의 괴력을 실감한다. (좀비들이 누워있던 것은 발차기를 맞고 진짜 아파서) 30분짜리 원 컷 영화니까 눈물씬에서 진짜 눈물 대신 인공눈물을 쓰면 된다고 말했던 여배우는 초반 감독의 열연(이자 독설)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자존심 세던 남자 배우는 분장 감독에게 진짜로 싸다구를 맞으며 자신의 진지한 모습을 봉인당하고 다음 장면에 투입된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 저 미친놈은 뭐지? / 두 번째로 봤을 때 : 감독니뮤 ㅠㅠ

이와 중에 현장에 같이 온 감독의 딸은 생방송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장면을 이어 붙이거나 지미집이 고장 났을 때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 아이디어를 내는 식으로 위기를 넘기는 데 큰 공을 세운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여배우가 동일한 장면을 3번씩이나 반복한 것도 사실은, 인간 피라미드를 쌓을 시간을 벌기 위했던 것. 결국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정규시간을 채우며 끝난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배우/스텝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도 자연스레 미소가 생긴다.

 

# For the movie

 

결국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위한 영화였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한한 감동과 재미였다. 비록 이 글에는 다 적지 못했지만, 영화 속엔 재미있는 부분이 정말로 많다. 내가 가장 마음이 갔던 영화 속 인물은 아무래도 감독. 비록 일류는 아니지만 터무니없는 제안(생방송에 30분 원 컷)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때로는 자신을 괴롭히는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참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관객인 우리는 촬영이 끝나고 편집된 영화의 모습만 볼 뿐이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로가 들어가 있다. 나는 CGV아트하우스에서 영화를 자주 보는데, 다른 영화관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불이 켜지는 반면 아트하우스의 영화는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불이 켜지지 않는다. 그곳에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노력한 모든 이들의 공로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천천히 본다.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구나. 그리고 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그 생생한 현장을 B급 좀비 영화로 페이크를 치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거구나. 뭣보다 그런 이야기를 무겁게 다루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너무나 재밌게 꾸며서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재밌는 영화라고 추천을 한다면 단 번에 추천할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영화의 첫 40분을 찍는 ‘진짜’ 촬영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30분을 NG 없이 원 테이크로 찍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완성된다.

 

바쁘실 분들을 위해 세 줄 요약을 준비했다.

 

1부(초반 40분) :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흔한 B급 영화 
2부(후반 40분) : (실은) 1부의 탄생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 
3부(엔딩크레딧) : 영화 그 자체와 영화인에 대한 마무리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여러분의 눈 앞에 빛을 쏠 준비를 마쳤다. 그럼, 이상으로 리뷰를 마친다. END

 

 

모든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