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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나 - Let's be new

리부트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이야기, <나기의 휴식>

본 글은 알레프 1호 <Let's be new>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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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기의 휴식>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메인 스토리보다는 나기의 심리를 따라 썼습니다.

 

# 내 인생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이 나이가 되도록 이룬 것 하나 없고, 내 인생이 참 보잘것없다고 느낄 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늪에 빠진 듯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 그냥 어디론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계로 도망치고만 싶을 때. 인생을 살다 보면 급속도로 우울해지는 시점이 있다. 그럴 때 문득 드는 생각.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완전히 초기화를 해버리는 ‘리셋(Reset)’은 할 수 없다. 대신 현상을 유지하면서 하루 하루를 견디거나 어느 날 갑자기 '리부트(Reboot)'를 선언하고 이전까지와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시도를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리부트보다는 견디는 쪽을 선택하고,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을 무장하며 관성적인 삶을 선택한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회에서 수년간 만들어온 지위를 포기할 수 없어서, 경력단절로 앞으로의 인생계획이 꼬일까 봐, 간신히 만들어낸 나의 공간을 지키고 싶어서...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이 쥐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놓기 어렵기에 리부트는 픽션 속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소개할 드라마 <나기의 휴식>은 성공기가 아니다. 다만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회생활, 가족관계와 같은 지속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하는 궤도 혹은 굴레에서 잠시간 한 발 빼고 있다가 돌아오더라도 인생이 크게 망하지는 않는다는(?) 소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이다.

 


# 작은 행동이 만드는 리부트

 

오시마 나기(쿠로키 하루)는 주변의 공기에 민감하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분위기의 흐름을 보고 자신이 해야할 선택지를 매 순간 고민하는 소심이 직원이다.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남들 모르게 회사 최고의 인기 가이 신지(타카하시 잇세이)와 사내연애를 하고 있다는 점. 그러던 어느 날 나기는 회사에서 신지가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왜 나기와 만나느냐는 짖꿎은 질문에 웃으며 그저 속궁합이 좋아서 만나는 것일 뿐이라며, 빈티 나는 나기를 왜 만나느겠냐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신지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내 과호흡으로 쓰러지게 된다.

 

나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난다. 도쿄 외곽의 허름한 맨션으로 이불과 자전거만 들고 나머지 짐은 모두 정리해버린다. 휴대폰도 해지하고, 신지를 위해 매일 하던 고데기질도 관뒀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나기의 휴식은 리부트의 계기가 된다. 그는 남 눈치만 보며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다시 이렇게 살지는 않겠노라 다짐하며 작은 행동들부터 바꾸어간다. 난처한 일에는 용기를 내어 거절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밀며 조금씩 달라져간다.

 

오늘부터 리부트를 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도 세상도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살던 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 현재의 생활 패턴을 다르게 가져가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래가 달라진다는 아주 작은 원리를 나기는 실천으로 행한다. 다만 그 과정이 아주 소박하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보는 관객들은 뭐야 저게 리부트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들이 쌓여 당신의 미래의 행로가 바뀐다면 기꺼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물론 나기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급작스럽게 리부트하여 새로운 삶을 열었지만! 도쿄에서의 28세 무직 여성의 삶은 녹록지 않다. 실업 급여를 받으려 고용 지원센터를 다니고 나름의 행복을 찾아 소소한 일을 벌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말은 휴식이라고 하지만 불편함에 온전히 쉴 수도 없다. 그와 중에 어떻게 알아냈는지 구남친 신지는 집에 찾아와 가스라이팅과 함께 자존감을 짓밟는 폭언을 하고...(물론 브랜-뉴 나기는 용기를 내어 그 폭언을 제지한다.) 새로운 일만 가득할 것 같은 나기의 일상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 원인: 어쩔 수 없음을 견디며 사는 삶

 

나기가 남들의 눈치를 많이보게된 원인은 어머니였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하며 딸의 죄책감을 자극해 돈을 타내고, 나기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자신이 필요하는 생각이 들면 행동을 저지른다. 어릴 적 도박을 하다가 사라진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머니는 혼자 채워나갔고, 그렇기에 나기에게는 응당 키워준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효녀’‘효녀’ 프레임이 씌워졌다. 

 

나를 위해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참고 견디어낸다. 그렇게 나기는 어머니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며 성장한 아이는 경청을 잘한다. 허나 이 경청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형성된 행동이다. 반론을 내거나 잘 듣지 않는다면 상대는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기꺼이 공격해오기 때문에 눈치 보며 맞춰가는 일종의 생존법을 터득한 셈이다. 문제는 이 생존법이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나의 감정, 나의 권리를 말할 수 없게 되고 마음속에 상처가 남는다. 그렇게 매순간 상처를 받는 체질이 되고, 스스로를 피해자에 위치시키게 된다. 나기는 어머니가 싫어할까 봐 맨션으로 떠난 후에도 계속 도쿄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기준에 미달한 것을 알게 되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을 알기에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하며 불안한 휴식을 이어간다. 

 

타인 지향적인 삶은 겉으로 볼 때 이타적인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에게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당사자는 '해야만 하는 일'들을 쳐내는 것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가기에 언제나 자기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삶이 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러한 고민이 남일 같지는 않았다. 요즘은 성인이 되어 자신이 자기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고 나서, 대개 취업을 앞둔 대학교 졸업반이나 사회초년생에게서 뒤늦은 자아에 대한 고민과 방황이 많이들 찾아온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다운 게 뭘까? 내가 학교와 회사와 소속의 이름을 떼고 나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의 지긋지긋한 삶에서 도망치고 싶다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지 못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관계 유지 비용과 간신히 만들어온 알량한 직업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기와 같은 타인 지향적인 사람이었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삶을 버텨왔다. 그래서 나기가 '어쩔 수 없음을 견디며' 사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자리에서 이탈했지만 강요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고통받는 게 참 슬펐다. 그러한 '어쩔 수 없음'을 강요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가족, 사회, 인간관계. 어느 것이든 나를 현실에 최적화시키는 모든 요인들은 결코 나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나기는 옆집의 곤(나카무라 토모야)에게 도움을 받아, 어머니와 담판을 짓는 것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명명하고 준비해간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당신께서 생각하는 최적화하는 삶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나의 독립된 삶을 살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려고 한다.

 


# 해결: 나를 피해자로 머물게 두지 않기

 

나기의 리부트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잠시간의 도피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최종보스 어머니와의 담판을 짓기 전에 뜻밖의 힌트를 주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마마. 우연한 계기로 취직하게 된 술집의 주인인 마마는 가게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나기에게 촌철살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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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손님들과 캐치볼 하듯이 대화를 잘하고 싶어서요. 적어도 던져준 공을 엉뚱한 쪽으로 던지지 않게요."

"의외네, 난 네가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

"그럴 리가요. 저를 무슨 냉혈한으로..."

"그러면 먼저 억지웃음과 영혼 없는 맞장구는 치지 마. 진심이 아니란 걸 상대가 다 알거든."

"그런 적.."

"애초부터 왜 상대가 대화의 공을 던져준다고 생각해? 네가 뭔데?"

"하지만 제가 대화의 공을 던지는 건 좀 어렵고 들어주는 거라면 제가.."

"혹시 넌 본인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타입이라고 생각해?"

"네?"

"진짜 잘 들어주는 사람은 상대가 치기 쉬운 공을 먼저 던져줘. 너는 상대의 눈치만 보면서 공을 안 던지니까 상대가 배려해서 화제를 만들어주는 것뿐이야. 그럼 네가 대화의 공을 못 던지는 이유가 뭐야?"

"그건..."

"네가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서야."

나기는 한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얘기를 듣는다. 마마는 나기의 경청이 불편을 회피하기 위함인 것을 간파했다. 대화의 본질은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상대의 눈치를 보며 맞춰간다는 의미는 달리 이야기하면 상대에게 흠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 상대에게 나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내가 불편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기의 모든 행동의 방향은 자신을 향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렇기에 상대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의 평판, 나의 이미지, 나의 멀쩡함을 증명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타인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인들에게 저당 잡힌 어쩔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기 스스로가 선택해온 결과였다. 

 

나기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해서 '남 눈치보다가 과호흡 온 불쌍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피해자에 위치하며 어쩔 수 없다며 살아갈 것인가. 작은 행동이라도 온전히 책임을 지며 혼자 선택하는 삶을 살 것인가. 

 

10부작의 짧은 드라마 안에서 나기는 과거의 자신을 훌훌 털어버리고 리부트 할 수 있을까? 수십 년 쌓여온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고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는 선택들로 세상을 '나'를 중심으로 최적화 해갈 수 있을까? 나기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기를 응원하며 보았던 드라마 <나기의 휴식>. 이 글을 보는 당신도 혹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보라. 이 모든 삶의 궤도는 누가 정한 것일까 하고 말이다. 나기의 결정은 그 해답을 들려줄 것이다.

 

 

 

 

 

 

 

 

 

 

 

 

 

 

 

 

 

 

 

 

* 사진출처 = 일본 TBS 텔레비전. tbs.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