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생의 추억을 말할 때면 언제나 소환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디즈니 만화 동산.
일요일 새벽 7시 칼기상하여 <티몬과 품바>, <헤라클레스>, <101마리의 강아지> 등 더빙판 만화 영화를 즐기던 일은 우리에겐 일상이었고, 기억이 되었고, 지금은 약간은 미화되어 좋았던 시간으로 포장되는 것 같다.
나 또한 디즈니 키드였다. 비디오가 늘어지도록 <라이온 킹>과 <포카혼타스>를 반복해서 돌려보았고, 디즈니 만화 동산을 거쳐 개봉하는 영화들은 최근의 <라이온 킹 실사판(?)>, <토이스토리 4>(픽사도 디즈니에 포함!), <겨울왕국 2>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챙겨보고 있다.(곧 개봉할 <뮬란 실사판>과 <온워드>도 기대하고 있다.) 근 25년 디즈니 외길인생을 걸으며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보고 정리하고 싶어 졌다. 다만 그때 좋았더랬다 하는 보정된 추억이 아닌, 적확하게 무엇이 좋았는지 그리고 다시 보니 지금은 좋아하지 않게 된 장면들을 되뇌어 연재물로 풀어내고 싶었다.
이 기획을 생각하게된 계기는 <알라딘>이었다. 매직 칼펫 롸이드를 하며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알라딘과 자스민, 지니의 원맨쇼, 악당 자파와 앵무새 이아고를 무찌르는 권선징악을 기대하며 극장에 들어갔다가 벙쪄서 나왔더랬다. 주인공을 압도하는 윌 스미스의 하드 캐리, Speechless와 캐릭터 수정으로 일약 재평가된 자스민 공주는 차치하더라도 알라딘 이 도적놈을 긍정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나오면서 한 번 따져보았다. 내가 좋아했던 디즈니 영화, 그 중에서도 '디즈니 프린세스'로 분류되는 영화들에 나오는 프린세스들의 파트너들의 직업군에 대해 말이다.
도적놈 - 알라딘, 라푼젤
뱃사람 - 포카혼타스
짐승 - 미녀와 야수
양서류 - 공주와 개구리
뚱뚱이 반신 - 모아나
순록이랑 대화하는 얼음 장수 - 겨울왕국
...
클래식에 속하는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오로라), 신데렐라, 인어공주(애리얼)만 해도 상대가 왕족이었지만 이후의 프린세스들은 절반 이상의 확률로 꽝을 뽑는 박복함을 보이고 있었다. 섣부르게 일반화한다면 매력은 있지만 출생 성분이 나쁜, 용기는 있지만 가진 것 없는, 혹은 출신은 좋으나 과거 행실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남성들의 신분상승/신분복구 서사가 꽤 많아 보였다.
디즈니는 리메이크 작업을 통해 저평가되었던 캐릭터(주로 여성)의 지위를 상향시켜 밸런스 패치를 하고 있다지만, 내가 비판없이 받아들였던 서사들이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디즈니 영화 다시 읽기>를 통해 정리의 시간이 갖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디즈니 영화 다시 읽기>는 삐딱한 시선으로 그러려니 넘어갔던 작품 속 서사와 캐릭터들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톺아보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다루는 영화의 순서는 무작위적으로 선택할 예정이고,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이라면 비단 디즈니 프린세스가 아니더라도 어떤 작품이든 다룰 생각이다.
다시 읽는 디즈니. 언젠가 한 번 꼭 해보고 싶던 숙원사업(?)을 지원해주는 웹진 알레프(El aleph)에게 감사를 표하며 한번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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