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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디즈니 영화 다시 읽기

3.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라이온 킹(1994)> 심바 2편

라이온 킹(199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보다는 심바의 마음 상태를 따라가며 읽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심바 1편 링크▼

 

2. 왕자는 왕이 될 수 없다, <라이온 킹(1994)> 심바 1편

<디즈니 만화 동산>을 즐겨보던 2030 어른이들은 <라이온 킹> 하면 <티몬과 품바>를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아버지를 잃은 심바가 티몬과 품바를 만나 ‘하쿠나 마타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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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에 실패했을 때

 

이제 내 차례인가?

사바나의 광개토대왕을 꿈꾸며 하이에나의 땅으로 북벌을 갔다가 실패하고 냉혹한 현실 속 자신의 서열을 확인한 심바. 뒤늦게 메타인지를 발휘하여 생각해보면 성체가 되지 않은 자신의 몸으로 적진에 들어간 것은 무리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킹바위의 지배자인 사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용감함 테스트’정도로 포장하여 왕자님의 치기 어린 모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후일 큰 스노우볼이 되어 영토를 덮치리라고 사자들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프레임에서 스카가 심바를 충동질하여 북쪽 땅으로 가게 한 행동은 어쩌면 교활하고, 비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경우의 수 모두 실리를 챙기는 묘수였다. 먼저, 심바가 정복에 성공했을 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전략을 제시해준 은인이 되기에 당장 왕위 서열을 밀릴지언정 왕자 근처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무파사가 사라진 다음 어린 심바가 즉위했을 때를 노려 손쉽게 자리에 오르는 판을 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심바가 실패했을 때는 왕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스카는 결과를 확인하고 바로 작전에 돌입한다. 그렇게 ‘오비이락’ 작전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2. 작전명 오비이락

 

스선생님 짖기 했으니까 작전 하나만 주시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스카는 ‘심바가 가는 곳에는 저주가 서린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판을 짠다. 평소 커넥션이 있던 하이에나들을 이용하여 다시 심바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버려지지는 않았지만 왕에게 신뢰를 잃은 심바는 한두 번의 실수가 더해지면 무리에서 내쳐질 수 있는 위기다. 동화 <푸른 사자 와니니>를 참고해보면 우두머리 마디바는 무리에서 강하지 않은 사자는 가차 없이 내치는데, 어린 암사자 와니니가 다시 마디바의 땅으로 돌아갈 선택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무리를 형성하는 모습으로 보아 한번 떠난 사자는 다시 받아주지 않는 게 그들의 국룰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심바는 일을 저지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그는 성체가 되기 전 북벌을 추진했던 야망가다. 외려 도박을 했다가 돈을 잃은 후 원금을 회복해보겠다며 신용 대출을 땡기는 중독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입지를 ‘극복’해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스카는 그 마음을 꿰뚫었다. 그래서 누떼와 하이에나를 미리 세팅해놓고 무파사 암살 작전, 작전명 오비이락을 개시한다.

 

쿠와아아앙! 스카는 어느 한적한 협곡에서 심바에게 짖기 연습을 권유한다. 심바는 삼촌을 따라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 무파사가 북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징벌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위축된 자신의 권위를 회복해볼 만한 책략이 필요했다. 스카는 그에게 북벌보다 더 하이리스크지만 이것만 성공하면 대역전이 될만한 무언가를 가져다줄 지략가였고, 그의 비위를 맞추며 새로운 것을 얻어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왕자가 유치하게 짖기 연습으로 카멜레온 뒤집기나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을 연상시키는 스카의 작전은 성공하여 무파사를 제거했고, 이게 다 ‘심바놈이 저주를 뿌리고 다녀서 그런 것이다.’라는 프레임까지 씌워 쫓아낼 수 있었다. 이 작전의 무서움은 가스라이팅에 있는데 ‘너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평생을 가져가야 할 죄책감을 왕위 쟁탈 경쟁자에게 심어서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전이 종료된 후 위로를 요청하는 조카를 야멸차게 내쫓고 하이에나에게 사살을 명령하고 사라지는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명이 다할 때까지는 해피엔딩일 거라고 생각했을 게다.

 

3. 티몬현덕의 큰 그림

 

티몬현덕과 그의 부하1, 2

 

하이에나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심바는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쓰러지고 만다. 이를 본 독수리들은 이게 웬 떡이냐 생각하며 어린 사자에게 몰려든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를 구해준 건 미어캣 티몬과 멧돼지 품바였다. 그들은 처음에는 심바가 사자라는 이유로 도망치려다가 이내 구해주고 함께 생활하기로 한다. 티몬은 재야에 숨어있는 은둔 고수였다. 라피키 영감처럼 민간신앙에 의존하며 기도 메타로 일관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결정해낸다.

 

그의 지략적 면모가 드러난 대목이 바로 ‘벌레식’이다. 육식동물인 심바가 자신들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벌레를 먹인다. ‘나는 아버지를 죽인 쓰레기야.’라는 마음으로 심신 미약 상태에 빠진 심바의 상황을 간파한 티몬은 식습관 개선을 제안하며 ‘새 출발’이라는 키워드를 새로이 심어 넣는다. 이는 이미 정신을 장악한 강한 무력의 품바처럼 자신을 지킬 또 하나의 무기를 얻는 기회로 작용했다. 티몬은 마치 삼국지의 유비처럼 매력을 통해 무장을 거느릴 수 있었고, 하쿠나 마타타라는 다소 종교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렇게 킹바위 생활권의 지방 호족처럼 살아갈 수 있던 티몬현덕은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에 흔들리게 된다. 바로 심바의 어린 시절 친구 ‘날라’였다.

 

4.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사실 하이에나들은 억울하다

 

왕위에 오른 스카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북쪽 하이에나 세력과 결탁하여 킹바위를 정복할 때 자신이 내놓았던 공략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다시는 배고프지 않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하이에나들이 척박한 북쪽 땅에서 킹바위 부근으로 내려왔고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사냥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이에나를 먹여 살리다 보니 경제가 무너져 민심이 나빠지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금리를 낮추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극복하면 참 좋았겠지만 주민들인 동물들은 이미 킹바위 부근을 떠난 지 오래였다.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말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듯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스카의 재임은 탄핵국면을 맞이할 상황이었다.

 

다시 티몬현덕과 날라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먼 곳까지 나와야 했기에 날라는 티몬현덕의 영역에 침입해 맛있어 보이는 멧돼지. 품바를 사냥하려 한다. 일촉즉발의 순간 날라를 막아낸 건 성체가 된 심바였다. 한동안 으르렁거리다가 아이컨택을 하게 되는 데 서로는 서로를 알아본다. 마치 대학생이 된 후 우연히 어느 가게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듯한 어색한 순간을 지나, 둘은 갑자기 사랑하게 된다.(?)

 

이를 지켜보던 티몬현덕은 이가 갈렸다. 만약 자신의 심복인 심바가 저 암사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지금처럼 자신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창 뜨거울 나이의 심바는 성체가 되어 만난 날라와의 시간이 좋기만 했고, 그러다가 날라가 던지는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스카가 킹바위를 장악했고, 경제가 망했고, 그래서 새로운 통치자가 필요하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듣고 티몬현덕은 계산을 해본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하나는 심바가 제안을 거절하고 잔류하는 것. 두번째는 심바가 제안을 받아들이고 쟁탈전에 참여하는 것. 전자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후자의 경우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확률적으로 심바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고뇌에 빠진 티몬은 우선 표면적으로 날라에게 거절하는 심바를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허나 그는 이미 계산이 섰다. 심바를 처음 본 순간, 벌레식으로 전환시키고, 하쿠나 마타타를 교육시키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그의 내면에 있는 야망의 크기를 발견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때문에 어떤 명분이 생긴다면 심바는 돌아갈 것이라고 내심 생각을 하게 된다.

 

티몬은 영화 프레임 밖에서 분주하게 심바의 잔류를 위해 위험요소를 제거했겠지만 뜻밖의 장소, 구름에서 갑자기 아버지 무파사의 영혼이 튀어나오는 것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 사라진 심바의 자리를 보고 빠르게 판단한다. 심바 정권 수립에 기여한다. 그리고 개국공신의 포지션을 잡는다. 때마침 아침에 나타난 날라가 동행을 제안하자 지체 없이 품바를 이끌고 킹바위를 향해 달린다.

 

5. 킹바위 쟁탈전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 ㅇㅋ

 

구름으로 나타난 아버지는 심바에게 오랜만에 나타나서 "Simba! Remember who you are."하고 사라진다. "네 주제를 알고 덤비렴."이라는 일관적인 피드백을 주는데 이 대사의 무게는 어린 시절과 성체인 지금 다르게 느껴진다. 메타인지 측면에서 아기 동물이 성체를 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젊고 강한 육체를 가진 지금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노쇠한 스카와 붙을만한 상황이고 이긴다면 하쿠나 마타타로 봉인해두었던 내면의 이글거리는 야망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심바는 킹바위를 향해 달려가며 왕권 탈환의 시나리오를 짜보았을 것이다. 스카에게는 하이에나 대군이 있었고 혼자인 자신이 그들과 스카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용인원은 날라를 비롯한 친인척과 이웃이었던 사자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숫자를 어렴풋이 계산하며 가급적 에너지 소모 없이 스카에게 직행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킹바위 부근까지 도착했을 때 후발대로 출발한 날라, 티몬, 품바가 합류한다. 하이에나로 가득한 그곳에서 심바는 새로 추가된 가용인원을 활용하기로 한다. 시뮬레이션 해왔던 하이에나를 따돌리는 방법으로 ‘산 미끼’ 작전을 명한다. 티몬은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일이지만 성공한다면, 또 심바가 왕위를 탈환한다면 개국공신이 되는 기회였기에 포스트 정도전이 되기 위해 ‘왜 훌라춤이라도 춰서 주의를 끌을까?’라는 말을 내뱉고 행동으로 옮긴다. 지행합일의 작전 수행은 성공적이었고, 심바는 피 한방을 흘리지 않고 스카에게 바로 갈 수 있었다.

 

웬 성체 수사자의 등장에 스카는 잠시 당황했다. 하이에나에게 죽었다고 보고받은 심바가 살아 돌아왔으니 말이다. 1대1로 붙기에는 힘이 딸리기에 특기인 프레임 짜기를 다시 시도해본다. 그가 수년 전 가스라이팅을 해두었던 ‘그래서 무파사는 누가 죽임?’ 이슈를 꺼내 심바가 제 입으로 말하게 시킨다. 죄책감에 순간적으로 심신 미약에 빠진 그를 스카는 절벽으로 몰아붙인다. 막타를 남겨놓고 말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아마 왕권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스카는 ‘히히 사실은 내가 죽였지롱.’하면서 뜬금 고백을 하고, 이는 심바의 분노를 이끌어내 역공을 당하게 된다. 그의 말실수는 계속되었다. 이게 다 하이에나 때문이다라며 새로운 판을 짜려했지만 그 얘기를 하이에나들이 듣고 있었고, 결국 모든 아군을 잃고 자멸하고 만다. 극적인 긴장감을 요하는 장면에서 순간의 안일한 말실수들이 연달아 나왔다는 점이 의아하긴 하다. 다소 허무하게 킹바위 쟁탈전은 심바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6. 킹바위의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심바는 왕이 된다. 날라 사이에서 암사자 하나를 낳고, 선왕의 충신 라피키 영감이 또 한 번 새끼 사자에게 고소공포증과 불안의 씨앗을 심어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라이온 킹>이 주는 교훈은 다층적이다. 어떤 이에게는 메타인지의 중요함을, 어떤 이에게는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빠른 상황 판단의 중요함을, 어떤 이에게는 말실수의 위험함을 경고한다.

 

어떤 이는 <라이온 킹>을 두고 왕권 계승을 미화하는 권위의 대물림을 미화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사자로 태어난 사람은 왕의 권위를 갖는데 홍학이나 가젤보다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전체 부/권력의 80%를 가진다는 파레토 법칙처럼 될놈될이며, 개천에 용 안나는 사회인 것은 여전할 것이다. 비단 실패 사례로 기록되었지만 우리는 심바가 될 수 없다면 스카나 티몬이 될 수도 있다.

 

혈통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략으로 왕이 된 자, 사자를 길들여 지방 호족의 권위를 누리던 미어캣의 사례는 지레 포기하고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살피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른이 되어 내가 심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다시 찾아본 <라이온 킹>은 주연만큼이나 조연들에게 빛이 많이 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