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의 유작이 된 <하나 그리고 둘>은 한 가족의 삶을 찬찬히 담으며 영화가 인생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인생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주인공 NJ의 두 자식인 팅팅(고등학생)과 양양(초등학생)의 주변부로 시작되고, 청년기는 NJ의 처남 ‘아디’로 대변된다.
인생에서 어떤 순간들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영화의 첫 시작은 ‘아디’의 결혼식으로 시작된다. 결혼이 꼭 필수적인 것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하나 그리고 둘>은 2000년 초반 작이다.) 그래도 중요한 경사 중 하나다. ‘아디’는 자신의 결혼식을 가장 길한 날로 잡기 위해 미뤄왔고, 으리으리하게 큰 곳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연다. 그리고 결혼식장에는 기쁠 희喜자를 두 개나 겹친 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디’의 결혼의 뒷모습을 살짝 들춰보면, 그는 오랫동안 사귄 여자가 있었지만, 이내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아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이 지나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사고로 쓰러진다. 그러면서 아디는 그 일이 그나마 ‘길일’이었기에 그정도로 끝난다며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중장년기는 NJ와 아내 ‘민민’이 맡는다. 그들에게 ‘처음’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결혼식장에서, NJ는 자신의 첫사랑 ‘셰리’를 만난다. 셰리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잠시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말을 하지만, 이내 화를 내며 30년 전 왜 자신 곁에서 없어졌냐고 화를 낸다.
한편, NJ는 자신이 임원으로 있는 회사를 다시 일으킬 사업 투자를 진행중이다. 한 때는 잘 나갔지만, 세상이 바뀌고 기존 것으로는 더 이상 이익 창출이 어렵다. 영화 내에서는 그의 회사가 정확히 무얼 하는지 상세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공학/프로그래밍을 전공한 NJ의 배경과, 그들이 투자 하려는 것이 새로운 ‘게임’형태를 제시한 일본인 기술자 ‘오타’의 기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것은 게임산업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나이 50을 바라보는(혹은 넘겼을지도 모르는) NJ에게 찾아온 것은 ‘변화’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에서 고민해야한다. 과거의 첫사랑은 갑자기 현재에 나타나 자신과의 미래를 약속해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적으로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미래에도 살아남기 위해 현재를 선택해야 한다.
한편 민민은 갑자기 쓰러진 엄마의 걱정이 크다. 코마 상태에 빠져버린 어머니를 집에 모셔놓고, 가족 구성원들을 보며 매일 앞에서 이야기를 하자, 라는 제안을 한다. 자신의 아들인 양양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혼내키지만, 결국 자신 역시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더 큰 슬픔에 빠진다. 자신이 옆에 있는 것보다 매일 신문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하고, 그녀는 자신 마음속에 있는 상처/내지는 혼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집을 떠난다. (정황상 그녀는 절로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나 그리고 둘>에는 많은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중심축이라고 (내가)생각하는 NJ와 팅팅에 대해서 좀 더 말해보고 싶다.
■ NJ의 경우 :
현 시점에서 그를 둘러싼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사고로 쓰러진 장모
2) 1)의 사건으로 집을 나간 아내
3) 30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 셰리
4) 위기에 빠진 회사와 이를 타계하기 위한 일본인 기술자 ‘오타’와의 만남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역시나 ‘사랑’과 ‘일’에 대한 것이다. NJ는 영화 속에서 올곧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가정에 충실하고, 사업에서도 도덕성을 중시한다. 그런 그에게 불현듯 찾아온 30년 전의 첫사랑과 집을 나간 아내. 이런 상황에 처하자 그는 현재의 사랑을 뒤로하고 잠시 과거로 향한다. 30년 전,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렸던 자신의 마음을 음성사서함으로 남긴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으로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오타를 만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사랑과 일을 대하는 NJ의 마음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다시 시작해보자, 라는 마음. 그래서 아마도, 장모가 쓰러지고 아내가 집을 떠나 절로 들어간 현재가 그의 앞에 있음에도, 윤리적으로 살아온 그임에도 불구하고, 오타와의 사업 미팅을 위해 도쿄로 가서 그의 첫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과연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매우 궁금해졌다. 지금 가족을 모두 뒤로하고 첫사랑을 다시 택할까? 그리고 오타와 협업하여 사업을 시작할까? (회사의 다른 임원들은 오타 대신 그의 기술을 잘 베낀 국내 사업가를 선택 하려한다.)
첫사랑과 외국의 거리를 손잡고 걸으며, 호텔 방문 앞에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너 뿐이야. 이제 다시는 곁을 떠나지 않을게.’ 라고 말하는 NJ. 선술집에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 앞에서 카드 마술을 선보이는 오타. 애석하게도, 이 마법 같은 밤이 지나간 후에 그의 기대처럼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30년 전 홀연히 사라졌던 자신처럼, 내일 아침 조식 때 자신을 깨우러 와달라는 말을 남긴 첫사랑은 이미 체크아웃을 한 뒤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국내 기업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하며, 오타에게는 대충 둘러대고 다시 대만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여겼던 것들 은 연속적으로 좌절되고, 그는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온다.
■ 팅팅의 경우 :
1) 할머니의 사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2) 친구 리리와의 우정
3) 첫 연애의 시작
4) 친구 집에 생긴 불행한 사건
팅팅은 자신의 아버지인 NJ와 닮아있다. 조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리리에게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둘의 사이가 영 좋지 않아 보인다. 남자친구인 패티는 리리에게 전해줄 편지를 팅팅에게 주다가, 결국 데이트를 하게 된다. 첫 데이트 날, 도쿄에 있는 NJ와 첫사랑의 모습도 같이 비춘다. NJ는 그들의 첫 데이트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팅팅의 첫 데이트와 아주 많이 닮았다. 그렇게 그 둘이 계속 사귈까? 나는 NJ에게 느꼈던 질문을 팅팅에게 반복했다. 친구와의 관계는? 그리고 역시나, 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만났던 패티는 다시 리리에게 돌아가고, 패티는 리리의 엄마와 바람을 폈던 영어선생을 대낮의 길가에서 죽인다.
사실, 영화 전반에서 팅팅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할머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원래 본인이 버릴 쓰레기를 할머니가 버리다가 쓰러지게 되는데, 이 때문에 팅팅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할머니가 아프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병상에 의식 없이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가장 말을 많이 거는 존재는 팅팅이다. 팅팅은 자신이 겪은 여러 일들 (친구와의 우정 또는 만남과 실연과 같은)을 할머니에게 털어놓고, 할머니에게 빨리 일어나라며, 본인의 잘못 때문에 할머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투정을 부린다. 그러나 할머니는 팅팅의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 그녀의 꿈에 나타나 팅팅을 보고 활짝 웃는다. 그리고 일어난 팅팅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이렇듯 사람의 인생 그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지만, 그들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도 있고, 전혀 관계없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영화에 내용에 관해 무어라고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아, 그렇구나. 아, 그랬구나 라는 감상을 하며 각 등장인물이 가지는 감정을 따라간다. 카메라의 시선은 주인공들의 상태에 ‘개입’하지 않는다. 주인공들도 다른 영화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가지고 있는 동기가 여기에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일반사람들에 대한 얘기 같다. 헤어진 옛 애인의 생각을 하고, 서툰 연애를 시작했다가 끝낸다. 결혼에 실패하고, 감정에 두려워 자리를 피한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다시 내 삶 속으로 돌아왔다. 인생에 관한 영화를 보면, 몇 분이나 TV가 꺼진 방에서 한참을 창 밖을 바라본다. 매 순간마다 나는 내가 옳은가/그른가 혹은 내 생각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 그리고 둘을 보면 거기에는 옳은 것이 없다. 생각대로 되는 일들도 없다. 누구나 사람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나서는 어떠한 결론도 내고 싶지 않다. ‘규정’을 해버리고 ‘결정’을 하는 순간 정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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