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영화는 방향을 돌러 중동으로 향했다. 같은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인종과 종교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우리와는 다른 중동. 이름이 비슷한 석유 재벌들이 살고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의 고향이기도 한 지역에서 나는 이란을 골랐다. 영화 제목은 <택시 (2015)>. 왓챠 썸네일은 선글라스를 쓴 검은 옷의 사내가 차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이었는데, 마치 그 남자가 기인처럼 보이며 영화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영화 설명에는 ‘20년 동안 영화 촬영 금지’라는 형벌(?)을 맞은 감독이 직접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니며 찍은 영화라 하니, 그 용기(?)에 빠져 나는 자취방 침대에 누운채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낯선 풍경과 함께 차 앞 좌석에 설치된 카메라를 따라간다. 차는 도로를 지나가다가 멈추고 사람들을 태운다. 이때부터 나는 요상한(?) 문화를 마주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미 택시에 사람이 타고 있는데도 동승을 한다는 것이었다.(실제로 동승 문화는 이란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손님으로 남자가 타고 이윽고 한 블록 정도를 지난 후에 여자가 탔다. 이것은 영화 중간 자신의 조카를 태우기 전까지 고리처럼 이어진다. 마치 케이블에서 방영됐던 ‘토크쇼 택시’가 옴니버스 같으면서도 이어진 느낌이랄까. 그리고 <택시>는 그 구성에 맞게 손님들을 바꿔가며 이란 내부의 문제들을 발설한다. 이 글 역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라는 택시에 동승한 사람처럼 하나하나 손님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 첫 번째와 두 번째 손님 : 사형제도와 사회제도
남자 : 사촌의 타이어 네 개가 몽땅 벽돌로 바뀌어 있었어요. 그런 놈들은 목을 매달아서 본보기를 보여줘야 해요.
여자 :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해요?
남자 : 그렇다고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것을 그냥 두나요? 율법에 따라서 단죄해야죠.
여자 : 저도 그런 일을 당하면 좋지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게 먼저예요. 사형 집행을 늘려서 모든 걸 해결하나요? 우리(이란)가 중국 다음으로 처형을 많이 해요.
첫번째와 두 번째 손님은 만나자마자 언쟁을 시작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본보기로 사형을 하자는 남자와, 이런 불안한 사회 분위기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여자. 그리고 그들의 대화 도중 나온, 이란이 중국에 이어 처형이 많다는 사실. 정말? 이란에서 사형으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나 역시도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찾아보니, 중동국가들은 아직도 잔인한 방식으로 하루에 3명 꼴로 사형을 집행한다. 흉악범이나 강도는 교수형에 처하고 간통을 한 여자에게는 어깨까지 몸을 땅에 묻고 돌멩이를 던져 죽이는 투석 처형도 행한다고 한다. 사회는 성숙해지고 고도화 되는데, 아직까지 중동 국가들의 인권의식이 낮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 형벌을 내리는 것은 사회질서 수립이나 정의의 측면에서 보면 합당할 수 있으나, 과연 그 범죄가 그 형벌까지 가야 될 문제인지. 더 나아가서는 그 ‘죄’라고 규정한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첫 번째 손님은 잔인한 방식의 사형을 집행하는 이란 정부 혹은 율법을 강조하는 종교지도자의 모습으로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서 이란의 인권 문제를 꼬집으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무분별한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두 번째 손님은 이란이 변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같았다.
대화 막바지, 여자는 남자에게 직업을 묻지만 그는 대답을 피한다. 대신 여자는 자신이 먼저 교사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남자에게서 돌아온 말은 ‘책만 보며 아이들과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만 한다’는 평. 하지만 택시를 내리는 남자가 밝힌 본인의 직업은 노상강도. 그리고 자신은 타이어를 훔치고 못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 세 번째 손님 : 이란의 문화 규제
세 번째 손님은 이란에서 볼 수 없는 서양의 영화나 드라마 불법 DVD를 파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화 시작 9분 만에 얼굴이 잡힌 감독의 얼굴을 보며 ‘자파르 파나히 감독님이시죠?’라고 그를 알아보는 첫 인물이다.
그러면서 감독에게 지금 상황도 영화를 찍고 있는 게 아니냐며, 방금 전 내린 남자(첫 번째 손님)의 마지막 대사가 영화의대사 같았다며 흥분한다. 그리고 자신이 감독의 아들에게도 DVD를 판 적이 있다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겠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감독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며 대신 인자한 웃음을 보인다.
그렇게 둘이 도착한 곳은 어떤 젊은 대학생의 집 앞.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다가 대학생은 감독을 보며 영화를 골라 달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연출을 하는 학생이라고 한 뒤 영화의 소재를 책과 영화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해 감독은 그것은 온전히 자신이 개척해야 할 문제라고, 그러면서 책과 영화는 이미 나온 것이니 다른 곳에서 찾아보라 답해준다. 그리고 감독에게 DVD업자와 동업자라는 말을 들었다 말한다.
젊은이를 보내고 세 번째 손님에게 넌지시 말한다. ‘우리가 동업자가 됐군요.’ 그러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감독의 이름을 이용해 대학생에게 많은 영화를 판 행위에 대해 고의는 아니었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감독은 다섯 번째 손님을 태운 뒤에 정중하게 내려 달라고 부탁한다.
세 번째 손님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란 문화계가 폐쇄적이라는 것. 미국(서방)의 것을 보는 것이 금기이고, 이렇게 암흑의 루트를 통해 접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란 사람들이 이런 것(미국이나 타국의 영화/드라마)를 접할 수 있겠나며 반문하지만 이런 암흑의 루트도 거시적으로 보았을 땐 불법행위와 다름없다.
# 네 번째 손님들 : 여성의 위치
DVD업자를 태우고 가던 도중 터널을 지나고 갑자기 사람들이 택시를 멈춘다. 그리고 머리에 피를 주룩주룩 흘리는 남자와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사람이 택시에 탄다. 사경을 헤매는 남자는 갑자기 감독에게 유서를 써야 한다며 종이가 없냐고 묻고 종이 대신 감독은 핸드폰을 건네며 남자의 유언을 영상으로 찍는다.
이란에서는 남편의 유산을 아내가 상속받을 수 없었는지, 다친 남자는 자신의 신상을 말한 뒤 집과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형제들이 자신의 아내를 고소하는 일이 없었다는 말을 남긴 채 정신을 잃는다. 아내는 오열하며 병원에 도착한 뒤 감독에게 그 영상을 꼭 전해달라고 말한다.
여자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세 번째 손님(DVD업자)이 대학생과 만나는 사이. 다급했던 아까의 목소리와는 달리 이번엔 담담한 목소리다. 남편은 다행이 괜찮았다고 했지만 여자는 감독에게 영상을 꼭 전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덧붙인 말은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중동지역에서 보통의 인권 보다 어쩌면 더 바닥에 있는 여성 인권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제도에서 나오는 그 불안감으로 인해 여자는 남편이 남긴 유언을 ‘육성 증거’로 남겨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도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여성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하고, 히잡 착용법을 반대하는 사람을 체포하는 등 아직까지 이란은 퇴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이란 내부에서는 이러한 히잡 벗기 운동을 ‘사회도덕과 이슬람 전통에 반하는 행위’라고 법무장관이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 조카 : 영화에 대한 이야기
영화가 중반으로 향해 갈 때쯤 감독은 자신의 조카를 데리러 학교 앞으로 향한다. 만나자 마자 유명한 영화감독인 삼촌이 오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다며 삼촌을 타박하는 찐조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침 단편 영화를 찍는 과제를 받은 조카는 삼촌에게 역시나 소재를 물어본다. 본인이 이미 찍은 영상이 있지만 ‘배급할 만한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말을 하며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준 배급할 만한 영화의 조건을 읊는다.
두건을 준수 할 것 / 남녀 접촉이 없을 것 / 추악한 리얼리즘을 담지 않을 것 / 넥타이를 메지 말 것
좋은 사람에게는 이란인 이름 대신 이슬람 성인의 이름을 사용할 것. / 정치와 경제를 이슈로 한 영화를 만들지 말 것.
조카는 자신의 카메라로 삼촌(파나히 감독)을 찍으며 계속 대화를 이어간다. 아마도 감독인 삼촌의 모습을 찍으면 좋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이 잠시 차를 댄 사이 어떤 이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돈을 줍는 소년을 발견하고 그를 불러 세운다. 훔친 돈이니까 다시 돌려줘야 해, 라는 말을 하면서 그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상에 소년이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자신의 영화가 엉망이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네가(소년이) 다시 돈을 돌려주어야 자신의 영화가 희생과 이타심을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이 모습은 이란 내에서 찍히고 배급되는 영화들의 실정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이란 사회 내에서는 부조리한 것으로 가득하고, 변화되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것을 찍어도 거부하고,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역시 그것을 볼 다른 사람에게 순전히 ‘올바르게 생각되는 가치’를 억지로 담는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
# 마지막 손님 : 추악한 리얼리즘
마지막 손님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한 여자. 장미 꽃을 산 여자는 변호사로 일했던 것처럼 보이며 3년 동안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천국으로 가고 있다고 감독에게 말하는데, 그녀가 말하는 천국은 사실 감옥이었다. 몇 개월 전 여성 몇 명이 배구를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란은 아직 여성들이 프로 스포츠에 참가하기는커녕 보러 가는 것조차 불법이라고 언뜻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와 관련해서 처분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한 사람을 어떻게 망쳐가는지 얘기한다.
첫째, 정치적인 이유를 붙여 여론에서 불리하게 만든다. CIA나 FBI와 연관된 사람이라고 거짓 뉴스를 낸다.
둘째, 도덕성에 흠결을 내어 이미지를 추락시킨다.
셋째, 친구들을 적으로 돌려 감옥에서 나오더라도 살고 있는 곳 자체를 더 큰 감옥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의 추악한 리얼리즘이라고 고발한다.
재미있는 건 이 말을 들은 조카가 그 점을 지적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방금 전 돈을 주은 소년에게 그 추악한 현실이 자신의 영화에 담길 수 없다며 말한 그 조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웃음이 나온다.
조카가 그때 뒷좌석에서 지갑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놓고 간 것인데, 지갑의 생김새를 보아하니 할머니들이 쓰는 것 같다고 말한다. 조카를 데리러 가기 전, 할머니 손님을 태웠던 감독은 그들의 목적지였던 알리의 샘으로 향한다.
차를 세워두고 할머니들이 있는 것을 확인 한 뒤 차를 비우고, 감독와 조카는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몇 초 후, 오토바이를 탄 두 남성이 차 근처에 주차를 하더니 택시를 뒤진다. 택시에 설치해놓은 카메라가 꺼지고 ‘메모리 스틱이 없어졌어.’라는 말을 남긴 채 영화는 끝이 난다.
*꽃을 든 여자는 실제 인권변호사인 ‘나스린 소토데’인데, 그녀는 2019년 3월 7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 33년 6월 및 148대의 채찍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녀의 주요 혐의 중에는 강제 히잡 착용법에 반대하다가 체포된 여성을 변호한 것도 포함된다고 한다.
# 영화에 대한 영화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의 영화감독이자 인권이나 정치개혁 운동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고, 2010년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퇴진 시위 영상을 만들다 2010년 정부로부터 20년간 창작활동을 금지 받았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나 이란 정부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 이 이유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정부의 눈을 피해 영화를 발표했고,, 오늘 다룬 2015년 작 택시 역시 가택연금 시절 몰래 찍었고, 결국 그 해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이란의 체제에 대해 비판을 끊임없이 하고, 자국 내 인권활동을 활발히 했던 이력이 택시 안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갔다. 당연히 영화는 실제 시민이 아닌 연기자들로 이루어서 촬영된 철저한 극 영화지만, 실제로 이란 사람들이 생활에서 부딪치고 느끼는 상황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역시나 감독이 주로 느꼈던 두 가지 주제인 인권과 영화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졌다고 생각한다. 사형제도에 대해 논하는 장면과 이란 내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차별은 그 좋은 본보기다. 또한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축출하고 삶을 지옥처럼 만드는 지도 잘 나와있다. (이는 감독 자신이 겪었기에 더 잘 알 것이라 생각.) 그리고 이런 추악한 리얼리즘을 다루고, 영화 안에서 이 점을 사람들의 입을 빌려 풍자한다. 그것도 감독이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면서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보이는 형식을 채택하면서. 그래서 당시 심사위원던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택시>에 대해 “영화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작품”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란은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이슬람 국가와는 다르게 여성들도 복장이 자유롭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정권이 바뀌기 전 독재자 시절의 70~80년대의 이야기였다. 당시 20세기 중 후반 까지 이란의 정부는 팔라비 왕조가 이끌었는데, 친서방 정책으로 인해 문화적으로는 개방된 시기였고, 이때의 이란 사람들의 이미지가 아직까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서게 되었다. (현재 이란의 정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많은 이란 사람들이 이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2010년 대에 들어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 마치며
의외로 이란은 아시아에서 영화 산업이 강세라는 설명을 봤다. 비록 자국 내에서는 엄격한 검열 때문에 상영이 쉽지 않지만, 다수의 영화제에서 이란 감독들이 상을 탄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영화에 대한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왓챠와 넷플릭스를 돌아다니면서 다수의 이란 영화를 접할 수 있었는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최근 개봉한 <세일즈 맨>도 모두 이란 영화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예술성과 사회고발성을 띈 이런 영화들이 계속 연출되고 나오는 것을 보면 새삼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국어 영화를 보게 되면 그 나라에 대한 문제도 접하며 시선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지지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www.dw.com, https://www.kmdb.or.kr/story/238/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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