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는 가끔 나를 놀라게 한다.
'Summer'라는 곡으로 유명한 경쾌한 연탄곡은 그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삽입곡이었고, 그는 그 영화의 감독을 맡으면서 또한 배우로도 출연하며 한물간 혹은 겉만 건달인 척 하며 츤데레처럼 아이를 보살펴주며, 유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 야쿠자를 소재로 한 <소나티네>와 <하나비>는 죽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한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고, 내가 거기에서 본 그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본 그 건달이 더 이상 아니었다. (시간 상으로는 이 두 영화가 더 먼저지만)
한 편, 왓차에는 또 다른 그의 영화 추천이 떴었는데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모두 하고 있습니까?>가 있었는데... 이 영화는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병맛과 에로가 뒤섞여져 있었다. 이 년 전쯤 기숙사에서 룸메이트가 산 대형 tv를 통해 이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하필 여과없는 노출씬이 나올 때 다른 층의 동기들이 들어닥쳐 잠시동안 '변태'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키즈 리턴>을 보았다. 아니 이건, 그의 이전 영화와는 또 느낌이 다르잖아. 전면에 내새운 사람들도 다르잖아. 검색을 해보니, <키즈 리턴>은 기타노 다케시가 불미스러운 일로 잠시 연예계/영화계를 떠나있다가 다시 올라오며 만든 영화라고 했다. 계속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다가, 그가 복귀작으로 선택한 것은 '성장 영화'.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연인 '마사루'와 '신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들의 학창시절을 포함한 인생의 몇 년을 다룬다. 영화 극 초반, 20대 초반의 백수처럼 보이는 그들. 마사루는 신지에게 '아직 권투를 배우고 있어?'라고 묻는데, 신지는 '아니 오래전에 관뒀어'라고 답한다. 신지는 마사루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고가도로를 넘어가면서 시간은 그들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성장영화라면 보통 주인공들이 시련을 겪고 점차 변화하고 나아지는 이야기를 그렸겠지만, <키즈 리턴>은 그렇지 않았다. 마사루는 수업을 빠지며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이고, 신지는 그의 말자하면 '똘마니'다. 이상한 건, 학교에서도 그들을 바로 잡기는 커녕, 그냥 자퇴하는게 좋지 않아? 라고 그들을 대한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끼리 있을 때도 자신이 맡은 학급의 대학진학률을 마치 보험 판매율처럼 말한다. 어쩌면 이것이 현실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마사루는 자신이 삥뜯은 학생이 데려온 친구의 주먹질에 나가 떨어진다. 그는 권투선수였던 것. 마사루는 복수를 하겠다며 복싱을 시작하고, 신지 역시 별 생각없이 그를 따라 복싱을 배운다. 하지만 마사루는 연습을 게을리 하는 건지, 그저 자신이 '복싱'을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인지 실력이 영 좋지 않다. 자신을 눕혔던 권투 선수와 스파링을 신청하지만, 비매너적인 행위로 중단되고 대신 '신지'와 붙는다. 묵묵히 연습을 하며 자신의 훅과 잽을 단련시킨 신지는 펀치 몇 번으로 마사루를 눕혀 버리고, 그 길로 마사루는 권투를 그만 둔다.
관장은 신지가 권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키우기 시작한다. 신지는 차곡차곡 실력을 쌓으며 데뷔전도 승리한다. 하지만 한 물간 권투선수가 그에게 접근하며 술과 담배로 그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한편, 권투장의 자랑거리라고 생각되는 '이글'은 메인 경기에서 패배하는데, 작전시간이 되자 관장은 팔꿈치 치기, 발 밟기 등의 비매너 행위를 종용하고 어떻게든 이기라고 주문한다.
권투장을 떠난 마사루는 평소 자신이 자주 가던 가게에 오던 야쿠자 무리에 합류해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던 그가 영락없는 야쿠자가 된 채로 동일한 장소에 나타난다. 그때의 이질감은 눈에 선연히 들어온다. 왜냐면, 바로 이 전 장면까지만 해도 권투를 배운다며 야쿠자가 맥주를 사준다고 해도 거절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재능을 숨길 수 없는 신지는 권투선수로서 승수를 쌓아나간다. 하지만 앞서 말한 한물간 복서의 유혹에 빠지며 자기관리에 소홀해 진다. 결국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패배가 쌓이고, 술로 살찐 몸을 약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그럴 수록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다.
그와 비슷한 사이, 신지는 그 지역의 중간 보스 쯤 되는 자리까지 성장한다. 이제는 어엿하게 기사도 있고 자신의 차를 몰고 다니는 성공한 야쿠자로 비춰진다. 그는 신지를 만나러 권투장까지 찾아오고, 그를 반갑게 대한다. 마치 각자의 길에서 각자 성공한 둘이 만나는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닌 중간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 이후 앞 문단에서 말했던 것 처럼 신지는 내리막길을 걷고, 마사루의 오야붕은 처참히 살해당한다.
일반적인 야쿠자 영화라면 복수를 위해 다른 구역의 보스를 처지하러 가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키즈 리턴>은 늙은 최종 보스가 큰 일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일을 끝내자 말하고, 주말 골프 약속을 자신의 오른팔과 잡는 정도로 끝낸다. 그리고, 마사루 이전의 중간보스였던 사람에게 '네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 건방진 꼬마가 왔다'라고 말하며, 본때를 보여주라고 한다.
그래서 마사루는 깊은 밤 자신의 중간보스였던 이에게 끌려가 죽도록 맞고, 일본도로 신체가 훼손된다. 그와 동일한 시각 신지는 링 위에서 상대방에게 죽도록 맞고 있다. 감독은 경기 중도 포기를 의미하는 수건을 링 안으로 던지고, 마사루는 피를 흘린다. 이로써 그들의 황금기는 각각 종말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영화 처음 장면으로 돌아와 그 둘은 자전거를 타고 자신들이 예전에 다니던 학교로 돌아온다. 학교에는 똑같은 선생님이 똑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비슷하게 생긴 학생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자전거로 한 없이 운동장을 도는 그들, 신지가 이렇게 문득 말한다. "우리들 이제 끝난 걸까?"
그러자 마사루가 이렇게 말한다.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했어."
그(기타노 다케시)는 왜 이런 스토리의 영화로 성장 영화를 만든 것일까. <키즈 리턴>에서 성공한 사람은 고등학교 때 만담 콤비를 하던 학생 둘 뿐이다. 사실 그들도 그리 크게 성공한 것 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성공은 성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얻어 교훈을 얻어야만 성장인 걸까? 그에 대한 답을 <키즈 리턴>은 적어도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성장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롯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적어도 인간에게는)흘러가고, 그 사이에는 수 많은 일이 생긴다. 사람은 그것들을 경험하고 몸에 축적시킨다. 그 사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상승과 하강이 모두 일어난다. 가끔은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그 양의 값과 음의 값이 모두 상쇄되어 0이 되는 때도 있을 것이다. <키즈 리턴>은 그 0의 지점을 영화의 시작과 끝으로 잡았다. 두 소년이 한 명은 불량배에서 야쿠자가 되었다가 다시 백수가 되는 과정으로, 한 명은 촉망받는 권투 선수가 되었다가 신문배달로 근근히 먹고 하는 처지가 되는 과정으로. 그래도 그들은 살아가려 한다. 영화 초반, 신지가 마사루에게 '요샌 뭐 하세요?'라고 물었을때 마사루가 '일 구해야지.'라고 말하는 것 처럼.
기타노 다케시는 실패를 말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키즈 리턴>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70퍼센트 쯤은 실패하고 말했다고도 한다. 인생이 성공보단 실패쪽으로 기울었다고 했지만, 이는 모를 일이다. 중요한건 그들이 그 이후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닌 것이다. 마치 저번에 다룬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처럼 <키즈 리턴>도 주인공에 삶에 카메라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하나 그리고 둘>도 성장영화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에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따위의 위로를 건내고 싶지는 않다. 그보단, 인생을 살면 이런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겠지. 그리고 그것 자체가 모두 '나'로서 쌓여가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가 인생이 힘들다고 나에게 물었을 때 그냥 살아, 그것도 인생의 일부야. 라고 기타노 다케시의 입을 빌려 말할 것이다. ENDE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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