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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우리의 인생 영화

1-1. [레퀴엠] 미래형 문장이 필요해

 

자주 하는 질문

 

“영화 좋아해요?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어느 지점엔가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빌어 누군가의 취향과 마음을 짐작하는 일. 나는 그런 대화로부터 비롯되는 일들을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와 일을 진득하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우리의 인생 영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거창한 유명 인사는 없을 테지만,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 영화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누군가의 인생 영화를 통해 그 사람을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영화에 대해서도. 그 시작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A여야겠다고 생각했다. 

 


A의 인생영화

 

: 네 인생 영화가 뭐야?
A : 뭘 기준으로 말해야 해?
: (기준을 생각지 못해서 당황했다) 음...  ① 이 영화를 보기 전의 나를 상상할 수 없다. ②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생각이 뒤바뀌었다. ③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내 인생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다. 이 중에 하나라도 충족하면 돼! 
A : 고민해 볼게.
.
.
.
: 고민해 봤어?
A : 영화 두 개 생각했는데, 베이비 드라이버랑 레퀴엠. 둘 중에 하나로 네가 골라.
: ...레퀴엠!

 

 

다른 사람의 인생 영화를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가겠다던 포부와는 달리, A의 인생 영화를 내가 결정해버린 꼴이 되었다. 본 적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보다는 본 적 없는 레퀴엠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쩐지 머쓱해졌지만, 포스터의 압박으로 주저했던 레퀴엠을 이번 기회에 보게 될 테니 해피엔딩이 아닐까? 그렇게 합리화하며 영화를 보았다.

 

 

 

 

 

 

영화 레퀴엠은 마약으로 인해 추락하는 사람들이 정말 끝까지 추락해가는 영화였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 친구, 사랑, 돈.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게 마약이었다. 영화는 눅눅하고 찝찝했다. 신경질적이던 화면과 편집, 사운드. 이 모든 것들이 피로했다. 왜 이 영화가 A에게 인생 영화일까. 궁금해지는 한편,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주 많은 게 지나갔는데, 정작 그것들이 뭐였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으악!)

 

영화 장면들을 복기해 본다. 이상, 불안, 회피, 해소, 중독.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추상적이라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에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라 골드파크와 나의 타로 이야기

 

레퀴엠에 등장하는 사라 골드파크는 매일 TV를 본다. 남편은 죽고 없고, 아들 해리는 이따금만 찾아올 뿐이다. 그녀에게 삶의 낙이란 TV와 음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가 온다. TV 쇼 출연을 알리는 전화다. 내가 매일 보는 TV 프로그램에 내가 출연한다고? 사라에게 새로운 낙이 생겼다. 그녀는 오래전에 입었던 빨간 드레스를 꺼내 든다. 이걸 입고 TV에 출연한다면. 들뜬 상상은 금방 끝난다. 빨간 드레스는 너무 작아졌다. 그녀는 살을 빼기로 작심한다. 다이어트 약―마약을 먹기 시작한 사라는 점차 부작용에 시달리며 추락해간다. 그런데 사라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라
: 나 텔레비전에 출연해.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해리 :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왜 그리 중요해? 엄마가 먹는 약 때문에 그전에 죽을 수도 있다고.

사라 : …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야. 살을 빼는 이유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어. 내가 느끼는 기분이 좋아. 빨간 드레스 생각하는 게 좋아. 텔레비전하고 너와 네 아빠도. 이제 햇빛을 받으면, 웃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미래형 문장을 끌어안고 버틴다는 건 저런 걸까.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2월 말부터 3월까지 나는 우울했다. 왜 우울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당시에 나는 아주 우울했다. 내 인생에 걸쳐 우울감이야 숱하게 있어왔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볍게 생각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 기복과 무력감이 유달리 심해졌다. 이유를 모르겠는 감정을 끌어안고 밤에는 자주 울었다. 또륵, 처연하게 울면 감상에라도 젖겠는데 으아아앙, 하고 애처럼 우니까 스스로가 무서웠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았다.

 

"곧 당신에게 귀인이 찾아옵니다. 곧 당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곧 새로운 변화…"

 

4월 운세를 점치는 타로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미래형 문장들이 가득했다. 지금과는 다를 조만간을 구체적으로 읊어주는 문장들이 든든했다. 나에게는 미래형 문장이 필요했던 건가? 잠깐은 우울감을 잊을 수 있었다.

요즘의 나는 우울을 어느 정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하루 세 끼 챙겨 먹기, 산책하기, 나에게 영상 편지 쓰기, 어린 시절의 나에게 편지 쓰기, 일기 쓰기 등 나름 여러 비책(?)을 통해 나를 조절하고도 있지만 분명한 건, 타로 영상도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타로 영상을 습관처럼 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레퀴엠을 보게 된 것이다.

 

 

 

 

 

 

 

 

 

영화 레퀴엠는 마약 중독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사라를 보며 아주 잠깐은 스스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미래형 문장을 오늘도 습관처럼 수집하는 내 요즘을. 나를 든든하게 만드는 그 미래형 문장이 정작 나를 망치는 것일까. 미래형 문장이 필요한 내가 지금의 나를 좀먹는 걸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는 미래형 문장 없이는 당장 들이닥치는 불안을 버티어낼 재간이 없는데. 그런데 정말일까. 미래형 문장이 지금의 나를…. 무한 루프에 휘말리기 전에 나는 침착해야 했다...! 일단 A를 만나야지. 만나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1-2. [레퀴엠] A와의 대담

[A에 대한 간략 소개] ■ 초등학교 6학년 때 힙합과 사랑에 빠짐 ■ 현재 영상학과에서 졸업을 준비하고 있음 ■ MBTI는 INTJ (몇 년 전에는 INFP였음) 첫 번째 대담(!) 나 : (어색) 안녕! A : 안녕. 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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