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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우리의 인생 영화

3-2. [케빈에 대하여] S와의 대담(with J)

 

 

3-1. [케빈에 대하여] 도통 모르겠다는 마음

"인생 영화가 뭐예요?" 직장 동료 S에게 물어보았다. S는 작년에 직장에서 처음 만났다. 어느 날엔가 외근으로 둘이 어느 학교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거의 처음으로 단둘이서 꽤 오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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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 S에 대한 간략한 소개]

■ 교육을 전공했어요!

■ 현재는 교육 콘텐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 MBTI는 INFP예요.

 

 

 

나 : (머쓱) 안녕하세요.

 

S : 안녕하세요. (ㅎㅎ) 떨리네요.

 

J : 안녕하세요! 저번에 이야기할 때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에 아는 분이 또 대담자시니까 함께 해보았어요.

*그렇게 이번 대담에는 2번째 대담자였던 J님도 함께 하였습니다☆

 

 


S의 인생 영화

 

 

: 그럼,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S님은 왜 <케빈에 대하여>를 인생 영화로 선택하셨나요?

 

S : 인생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여러 가지일 테니까, 여러모로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요. '내가 왜 영화를 좋아하지?' '어떤 영화를 볼 때 막 들뜨고 좋더라?'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하다가 내린 결론은 '나는 무언가 남는, 생각에 잠기게 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였어요. 그래서 그런 영화들로 목록을 짜보았는데, 대체로 가족 영화와 교육에 관한 영화가 많았어요. <케빈에 대하여>는 가족과 교육,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영화였고요! 본성과 양육이라는 아주 문제적인(?), 제가 관심 있는 담론도 담겨 있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이번에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J : 제가 진짜 좋아하는 영화예요. 너무 인상적이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봤었어요.

 

S : 저는 주변에서 좋다고 추천을 많이 해서 언제나 보려고 했었는데요, 늘 토마토 씬에서 잠들어서 끝까지 못 보곤 했었어요. 어느 날엔가 끝까지 다 보고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지요..!

 

, J : 토마토 씬은 완전 극 초반이 아니던가욧..!??

 

S : (ㅎㅎㅎ) 늘 잠들기 전에 봤었어가지고요...(ㅎㅎㅎㅎ)

 

나 : 그렇다면 먼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지요! 두 분에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S : 저는 케빈의 눈동자가 클로즈업되면서, 눈동자에 비친 과녁이 점점 커지는 장면이요. 영화 전반적으로 특정한 색깔들이 캐릭터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에바는 빨강, 케빈은 파랑, 그리고 케빈의 동생은 노란색으로요. 케빈의 눈동자 안에 있던 과녁에 빨강, 노랑, 파랑 이런 색깔들이 가족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뭔가 이 영화를 요약하는 장면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에바의 입장에서 케빈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는데요, 이 장면에서 케빈이 바라보는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J : 말씀하신 것처럼 빨간색이 에바라면, 과녁의 정중앙이 빨간색이잖아요. 케빈의 목적은 늘 에바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 같기도 해요. 에바가 케빈에게 '악성코드를 왜 모으는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때 케빈이 '이유는 없다, 그게 중요하다(point)' 말해요. 그러니까 케빈은 이유가 없고, 이유가 없는 것이 포인트인 사람인데 영화에서 성인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할 때 눈동자와 과녁을 비추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어요. 무언가 빗겨나 있는, 그런데 그 빗겨남이 무엇인지 알겠는...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딱 표현하기는 어려운 느낌적 느낌이랄까요! 

 

 

 

 

S : 오, J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과녁 장면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혜정 님은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셨어요?

 

나 : 저는 에바가 케빈을 낳는 장면이요. 죄수가 교도관에게 붙잡혀서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요!' 외치는 때에 출산 장면으로 이어지잖아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소리와 에바가 아이를 낳는 순간의 오버랩이 너무 절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에바의 얼굴도 무언가에 비쳐서는 마구 뭉개지잖아요. 인물의 감정을 너무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장면과 장면을 잇는 방식이 놀라워서 '미쳤다...' 하면서 보았답니다. 음악도 정말 인상적이었고요.

 

S : 저는 제일 충격받았던 장면은 에바가 케빈에게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훨씬 행복했다'고 말하는 장면이었어요. 아이한테는 보통 묘한 하이톤으로, 친절하게 말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말투로 자기 아이에게 저렇게 솔직하게 말하다니... 너무 신선하면서도 놀랐어요. 생각할수록 공감이 되는 말이기도 했고요. ㅎㅎ

 

J : 저는 <케빈에 대하여> 하면 영화 속 장면보다도 포스터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그 에바의 얼굴이요.

 

 

 


모성애

 

나 : 두 분은 모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모성애라는 것이 신화이고, 결국 모성애는 만들어진 것이지 실체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없을까?' 이렇게 마음 한켠에 뭐가 남는 것 같아요.

 

J : 모성애가 몸에서 아이를 낳는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겨지다 보니까.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큰 벽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 같아요. 

 

S :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이 있는데요. 동생에게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마음이 있어요. 엄마와 아빠, 언니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유난히 동생에게 그런 마음이 돼요. 나보다 작고 어린 존재를 보살피고 지켜주려는 마음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런 마음에 어쩌다 사회적으로 '모성애'라는 말이 붙여진 게 아닐까요? 

 

저는 그 마음에 '모성애'라는 이름이 붙여진 게 조금 불편해요. 어떤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 생길 때,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의지할 때, 무언가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볼 때처럼 마음이 이상하게 저릿하면서도 행복하다가도, 안 아팠으면 좋겠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싶고. 그런 감정은 그냥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하나일 텐데, 엄마의 역할로만 정해지는 느낌이랄까요. 

 

나 :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바와 케빈 사이에서 주고받는 것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 '모성애'이라는 단어로 충분한가? 싶더라고요. 어쩐지 꺼림칙하면서 답답했는데.. 도통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런 기분이었답니다....! 

 

 


케빈과 에바, 적대감의 이유

 

 

나 : 케빈이라는 인물도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어요. 케빈이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밀고 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기존 영화의 서사에 익숙해져 있는 건지, 이유가 분명하게 잡히지 않으니까 생각이 자꾸 배회를 하더라고요. 둘이 왜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사실 지금도 계속 불편해요. 뭘까? 왜 그랬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나요. 

 

S : 케빈은 생각할수록 어려운 존재 같아요. 아마도 케빈은 어렸을 때부터 에바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요. 원래 어렸을 때 알게 모르게 이미 눈치를 채잖아요.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케빈은 어렸을 때부터 그걸 너무 잘 알았으니까, 그런 적대적인 관계가 가능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J : 그런 적대감을 누가 먼저 시작했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에 '이유가 없는 것에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잘 모르겠는 것에 이유를 찾고자 하는 건 결국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들이 대다수라고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 아닐까요. 케빈처럼 불가해한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걸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은 소시오패스가 아니었을까, 같은 이유를 찾게 되는 거죠.

 

S : 영화가 에바의 시선을 주로 따라가고 있다 보니까, 케빈의 의도가 계속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케빈은 에바가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그래서 아기 때부터 에바에게 못되게 굴었던 걸까. 그런데 왜 에바를 완전히 싫어하지는 않았지? 학생들과 아빠, 동생을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정작 답은 케빈 자신에게 없을 수도 있겠다... 내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 같아요! 

 

나 : 이 영화가 유독 '왜'라는 질문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는 에바를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모성이 없는 사람. 그래서 케빈과 관계가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에바가 둘째를 낳는데 뭐랄까요, 상당히 엄마다운(?) 모습을 보여요. 거기서 에바에 대한 제 생각들이 또 무너졌어요. 에바는 엄마가 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상대가 케빈이었기 때문에. 정말 그냥 상대가 케빈이어서 그렇게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던 게 아닐까 싶으면서... 어떤 존재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적대감을 내가 그랬기 때문에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어떤 존재 자체에서부터 비롯되는 적대감에 '왜'라는 질문은 사실 소용이 없으니까...! 이런 이유 없는 적대감을 엄마와 자식 관계로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S : 적대감이 가장 극대화되는 관계잖아요. 보통 '엄마는 자녀를 싫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으니까. 그 통념에 도전하기 위한 적절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J : 남은 안 보면 그만인데, 엄마와 자식은 안 볼 수 없는 관계니까. 그 오묘한 감정선을 더 파고들 수 있는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엄마와 아들.... 왜 하필 또 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엄마와 자식은 떼어낼 수 없으니까 결국 풀어내야만 하는 상황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S : 본성과 양육에 관해서도 다른 분들 생각이 궁금해요. 학교에서 그런 거 배우잖아요. 성선설과 성악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 저는 반반이에요. 성무선악설이라고 하나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사람의 마음은 백지이고, 그래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저에게는 필요해서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있는데, 이걸 내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데다가 바꿀 수도 없다면 절망적이니까.

 

J :  그런데 사람마다 어느 정도 기질이 정해져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지가 않은 것처럼, 같은 말을 들어도 어느 방향으로 생각하는가는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해요.

 

S : 저는 학교 수업 시간에 토론을 했었어요. 타고난 기질과 교육에 대해서요. 저는 교육을 믿고, 또 그걸 배우는 입장이니까 사람의 본성보다는 교육을 믿는다고 의견을 이야기했어요. 사람이 어떻게 태어났는지가 더 중요하다면 교육의 의미가 줄어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 생각을 깨기 위해 이 수업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주변 환경에 따라 결국 그 모양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는데, 그게 엄청 인상적이었어요. 기질과 교육, 두 가지 중에서 꼭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사람마다 타고난 것이 있다는 생각이 꼭 회의주의적인 것만은 아니구나, 배웠던 것 같아요. 

 

나 : 케빈은 다른 환경에서라면 달랐을까요?

 

J :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이수정, 이다혜 범죄 영화 읽기>를 듣고 있거든요! 거기서 이수정 박사님이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수십 년간 범죄를 공부한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걸 보면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기질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아몬드>라는 소설도 생각나는데요. 그 소설에서는 기질적으로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애가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요. 기질적으로는 전혀 아닐 애가 사이코패스에 가깝다는 설정이에요. 이런 문제는 모두가 궁금해하고, 또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 같아요. 

 

 


빨간색과 마지막 포옹

 

 

 

 

J : 영화에서 내내 에바가 빨간색을 지우잖아요. 그 과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요. 그리고 영화 막바지에는 집이 깨끗하고, 집안에는 깨끗하게 정돈된 케빈의 방이 있어요. 교도소에서 안는 마지막 장면까지 쭈욱 보고 나면, 되게 미묘하더라고요. 저 순간에 에바는 지금 엄마가 된 건가? 엄마로서 안아준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정말 그런 의미라면, 슬프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자신의 색깔을 지워내야만 비로소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 싶어서요. 두 분은 빨간색을 지우는 행위를 어떻게 보셨어요?

 

나 : 저는 빨간색이 에바와 케빈의 관계랄지, 혹은 그 둘이 쌓아 올린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에바와 케빈의 위태로웠던 관계요. 그 시간과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에바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을 '지우는 행위, 하지만 실패를 반복하는 그 행위'로 나타낸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에바는 '모르겠어서 계속 생각하는데도 도무지 모르겠다'로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에바가 케빈에게 물었을 때, 케빈이 대답하잖아요.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다'고요.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있지 않았을까요? 엄마와 아들로서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서로의 시간을 알고 있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해의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저는 포옹을 그런 맥락으로 이해했어요...!

 

 

S :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지난 시간과 사건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라고 생각했어요. J님께서 아까 언급하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에 릴케의 글이 나오거든요. 영화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 글이 떠올랐어요. 특히 마지막에 에바가 케빈을 안아줄 때요.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것에 인내심을 가져라. 그 질문을 잠긴 방이나 외국어로 쓰인 책처럼 여기고 그 자체로 사랑하려고 애쓰라. 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 그 답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게 관건이다. 지금은 그 질문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먼 날에, 점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답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초반부에 케빈은 에바에게 숙제 같은 존재였을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답을 얻고 싶었겠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케빈을 그냥 다른 인간으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싶어요. 이해하려고 애쓰고 노력했을 때보다 케빈을 더 이해하게 된 게 아닐지.

 

 

 


결혼과 자식에 대한 우리 이야기

 

 

나 : 이쯤에서 두 분에게 다른 질문을 해볼게요. 결혼과 양육에 대해 두 분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J : 결혼에 대해서는 너무 어려워요...!  저는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아직은 아이고요...(웃음) 아직은 머나먼 일인 것 같아요. 만약 결혼을 한다면, 전통적인 의미의 부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생활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구축해나가고 싶어요. 

 

S : 아이를 낳는다면 제일 무서운 게, 내가 내 아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정말 악한 일을 저지르는 아이가 내 아이라면...!!

 

 

 

나 : 그렇다면 S 님께서 교육을 전공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교육이 어찌 보면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잖아요. 부모가 된다는 건 누군가의 인생에 통째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내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당할 용기(?)가 원래부터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그걸 진짜 무서워하거든요.

 

S : 교육을 전공한 건, 어떤 이유에서든 가정에서 상처를 받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런 아이들을 사회에서 케어하지 않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그게 싫어서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육을 전공했는데요. 막상 교육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니까 되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너무너무너무 무섭지만, 내가 믿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있으니까... 그냥 그 정도 선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 :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자식이어도요!?

 

S : 자식이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저는 동생만 하더라도 진짜 무섭거든요. 동생이 저랑 언니 영향을 많이 받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동생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동생이 친구들과 있을 때 세대 차이를 느낀다던지 하는 것처럼요. 그래도 뭐랄까요. 아이가 있으면 그런 걸 고민하면서 내가 더 강인해질 수 있겠다는 마음은 들어요. 어떤 사람을 되게 이해하고자 애쓰는 마음에서의 강인함.. 이랄까요! 아이가 생기면 고민이 엄청 많아지겠죠.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할 때의 성장일까요?

 

S : 네. 이 부분은 영화 <컨택트>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운명을 받아들이는 힘.

 

나 : 저는 오늘 두 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모로 감명을 받았어요. 저는 불가해한 것을 가만히 못 놔두는 성격이거든요. 불안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을 되게 오래 붙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 저러지? 왜 저렇게 말하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 그러다가 끝끝내 모르겠으면 다 내려놓고 미워하다가, 그렇게 스스로를 소진해가고.... 그만큼 제가 담대한 사람은 아닌 것인데요. 만약 자식이 그렇다면 저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지도 몰라요. 이유를 알고 싶어서 계속 붙들고서 말 걸고. 아마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스스로가 또 싫으니까 자괴감 느끼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두 분 이야기 덕분에, '섣불리 원인을 찾지 않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세상과 타인은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도요.

 

 


급작스러운 마무리

 

 

나 : 어떠셨나요, 오늘 이야기.

 

J : <케빈에 대하여> 원제가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이잖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 케빈에 대해 너무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주변에 영화를 본 사람이 없어서 못했었거든요. 아무랑도 이야기를 못했는데. 오늘 이야기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나 : (ㅎㅎㅎ) 그럼 이제 진짜 마지막 질문인데요, <케빈에 대하여>를 누가 보면 좋을 것 같은지 추천해 주세요.

 

S : 내가 이상한가?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나 :  케빈과 비슷한 사람에게 추천하는 것일까요..!?

 

S : 앗, 저는 오히려 에바를 생각했어요. 나만 이상한 엄마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요. 저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서 묘한 위안을 얻었거든요. 가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데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런 영화를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누구나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새삼 알게 되어요. 사회가 강요하는 어떤 개념이 있고, 그 개념 때문에 이상하다고 받아들여질 뿐이다, 라는. 

 

J : 저는 자녀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 S : (웃음)

 

J : 그리고 엄마만 말고 꼭 아빠도 함께, 꼭 둘이 보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