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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풍경의 발견

[피아니스트] 캐러멜은 어떻게 6조각으로 나뉘었나

‘홀로코스트하면 떠오르는 영화를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고민없이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라고 하겠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타기도 했죠.

 

출처 = 네이버 영화

 

최소한의 이해를 돕기 위한 줄거리를 덧붙입니다.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에드리언 브로디 분)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사는 유대인 피아니스트다. 1939년 갑작스러운 폭격 이후 스필만과 그의 가족은 게토(유대인을 강제로 격리한 공간)로 쫓겨 생활한다. 가족들은 수용소로 향하고, 스필만은 혼자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폐허가 된 공간에서 버려진 음식들로 연명하던 스필만은 순찰을 돌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스필만이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자 독일 장교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킨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라면 수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피아니스트>는 그중에서도 독자적인 성취를 이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을 피아니스트로 설정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뻔한 유대인 핍박의 서사는 녹턴, 발라드 등 쇼팽의 곡들을 바탕으로 특유의 낭만적이면서도 음울한, 그러면서도 웅장한 비극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여기까지는 <피아니스트>에 대해 꼭 짚고 싶었던평가입니다.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피아니스트>를 떠올릴 때마다 제 뇌리에 가장 먼저 스치는 것은 사실 나치도 유대인도 아우슈비츠도 아닌, ‘캐러멜입니다. 정확히는 캐러멜을 6등분 해 스필만 가족이 나눠먹는 장면입니다.

 

이 씬은 영화 초중반 부에 나옵니다. 관련 영상도 첨부합니다. 2분짜리인데, 바쁘시면 25초부터 1분 40초까지 보셔도 좋습니다.

 

#1942816일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 가족들은 수용소로 이동한다. 공터에 모인 사람들은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대기한다. 스필만의 아버지는 캐러멜 하나를 사서 6등분으로 나눈다. 가족들은 한 조각씩 집어 먹는다.

 

 

이게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장면도 아닌데요. 기억하는 사람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의미부여를 하자면 화폐 체계가 무너진 폴란드 경제라든지, 캐러멜 하나 제대로 못 먹고 나눠 먹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 등이 있겠습니다만, 없다고 해서 영화 진행 상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는 수준입니다.

 

더구나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말 그대로 캐러멜을 6등분 하는 인물의 그 행위 자체입니다. 나치, 독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다 배제하고 말이죠. 그냥 투박한 손가락으로 작은 칼을 집어 들고 캐러멜 하나를 자르는 그 클로즈업 쇼트 말이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요소가 내 감각을 자극했을까. 대체로 이런 감각의 터치는 낯섦과 생경함에서 오기 마련입니다. 경험하지 못했거나 저의 기존 문맥에서 벗어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요소들을 꼽아봤습니다.

 

1. 딱딱한 캐러멜

 

스필만 가족이 나눠 먹는 캐러멜은 평범하게 생겼습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 파는 것과 비슷합니다. 연한 갈색에 손가락 마디 두 개를 붙인 정도의 크기입니다. 모양은 육면체인데 면의 길이가 일정하지는 않고 위아래가 좀 짧습니다. 한마디로 납작하죠.

 

사실 저는 캐러멜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제 돈 내고 사 먹은 적은 없습니다. 맛과 질감 모두 제 취향과는 멉니다. 그래도 가끔 손에 쥐어주면 또 먹기는 해서 모양새는 익숙합니다. 그러니까 캐러멜의 모양 때문은 아닐 겁니다.

 

좀 의아한 부분은 캐러멜의 강도(强度)입니다. 제 경험으로 캐러멜은 딱딱한 물체입니다. 이빨로 씹으며 침까지 배어들면 점점 물컹해지긴 하지만, 일단 집어 들었을 때의 느낌은 완연한 고체죠.

 

그런데 영화에서 캐러멜은 입에 들어가기 전부터 딱딱함과 물렁함 중간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뚝 잘리긴 하지만 어딘가 힘이 없어 보입니다. 점성이 약하다고 할까요. 물로 뭉쳐서 말린 전분가루 같다고 해야할지. 칼에 묻는 캐러멜의 잔해들도 그렇고, 주변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들도 눈에 거슬립니다.

 

날이 더워서, 라기에는 외투까지 꼭 챙겨 입은 사람들의 의상이 걸립니다. 아니면 폴란드의 캐러멜은 뭔가 독특한 재료를 쓰고, 제조 방식이 다른 걸까요? 어쩌면 제 경험이 어디선가 곡해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조만간 캐러멜을 사서 관찰해봐야겠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2. 무딘 칼날

 

캐러멜을 자를 때 쓰는 칼도 요상합니다. 손가락 하나 정도 되는 길이인데 칼날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습니다. 맥가이버 칼 비슷하달까요.

 

일단 이상한 것은 이 칼의 용도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철저히 제 얕은 지식과 경험에 비춰) 손가락 1.5마디 정도 되는 칼날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눈썹 정리를 위한 거라고 하기엔 굳이 휴대할 필요가 없고, 과일 껍질을 깎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택배 상자에 묶인 끊을 자르는 용도론 최적일 것 같은데, 그럴 일은 없겠죠.

 

그렇다면 혹시 이 칼은 캐러멜을 자르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스필만의 아버지는 캐러멜 ‘덕후’일 수도 있겠습니다. 덕후들이 그렇듯, 쓸모와는 상관없이 캐러멜과 관련된 것을 모조리 산 거죠. 그중 하나 건진 게 이 칼인 겁니다.

 

그러고 보면 한 치 앞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누군가는 물이 없어 죽어가는 판에 20즐로티라는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캐러멜을 사서 먹는 심리가 납득이 안 되긴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흘기는 시선도 감내하면서 말이죠. 배를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요.

 

이 칼이 특수 용도라고 생각되는 점은 또 있습니다. 얼핏 날카로워 보이지만, 캐러멜 하나 제대로 자르지 못합니다. 지저분하게 잘릴뿐더러 네 번째로 자른 조각은 튕겨 나가기까지 합니다. 그냥 나무막대기나 손톱으로 자르는 편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요.

 

이건 고체이자 액체의 성격을 지닌 반전의 캐러멜을 자르기 위한 안성맞춤형 칼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단해 보이는 것을 날카로워 보이는 칼로 베지만, 그 결과는 둔탁하게 짓눌리는 거죠.

 

좀 더 생각해보면 이건 어쩌면 영화에 대한 하나의 비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날카로움이란 없는 세계, 날카로움이 불가능한 세계를 말이죠.

 

이 시퀀스에서 한 유대인은 '수치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스필만의 아버지에게 "우리는 50만 명이 넘으니 탈출할 수 있다"며 한번 싸워보자! 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됩니다. 바이올린 휠로 싸울 거냐는 이죽임과 함께요. 아무 계획도 없이 싸울 수는 없다는 것이죠. 독일군이 허망하게 우릴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들은 칼을 쥐고 있지만, 이 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날이 무디기 때문입니다. 막대기처럼 지그시 누를 뿐입니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는 매끄럽지 않은 표면과 부스러기가 남습니다. 몇몇은 튕겨 사라집니.

 

출처 = 네이버 영화

 

3. 흔들리는 종이 위에서 캐러멜이 나뉘는 거야

 

그렇게 캐러멜이 6등분 됐습니다. 이제 나눠야 하는데 이 방식도 눈에 거슬립니다.

 

스필만의 아버지는 캐러멜 조각들이 놓인 포장 종이를 잡아듭니다. 가족들은 각자 종이 위에 있는 캐러멜 조각들을 하나씩 챙깁니다. 문제는 캐러멜 종이가 굉장히 작다는 겁니다. 더구나 수전증이 좀 있는지 손도 부들부들 떨립니다.

 

, 저러다 떨어지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캐러멜을 썰 때 받침대로 썼던 바이올린 케이스라도 아래 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기어이 손을 쭉 뻗어 종이는 모래바닥 위에 위태롭게 떠있게 됩니다.

 

저라면 손으로 한 조각씩 쥐어 가족들에게 직접 나눠줄 겁니다. 물론 애초에 캐러멜을 사지도 않았겠지만요.

 

어쩌면 이 감독은 저 흔들리는 종이와 그 위에 있는 캐러멜을 통해 이 씬의 긴장감을 높이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착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는 것만큼 불안한 순간도 없을 겁니다. 한 치 앞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사소한 떨림을 만들어내는 것뿐입니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흔들거나,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긴장할 때마다 이런 인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저 깊숙이 심장에서부터 나오는, 통제 불가능한 박동을 상쇄하려는 노력은 아닐까요.

 

출처 = 네이버 영화

 

부록) 둔탁한 소리

 

개인적인 얘기를 좀 덧붙입니다. 캐러멜을 자를 때 나는 소리입니다. - -. 이건 특유의 점성을 지닌 캐러멜 말고는 날 수 없는 소리입니다. 고체와 액체 사이, 서걱서걱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도 아닌, 칼날이 캐러멜에 들어가서는 무음이었다가 잘리는 순간 둑- 하는 이 소리는 어디 견줄 데가 없습니다.

 

특히 스필만의 아버지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받침으로 쓰면서 이 소리의 독특함은 빛을 냅니다. 두꺼운 케이스에 닿는 칼의 둔탁한 소리에 더해 캐러멜 종이와 스치는 순간 틱- 하고 나는 소리는 참으로 완벽한 조화입니다.

 

이건 일종의 ASMR로 보입니다. ASMR은 자율감각 쾌락반응인데 주로 청각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을 얻는 경험을 말합니다.

 

저는 대체로 유행을 팔로하는 입장입니다만, 초창기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ASMR입니다.

 

시작은 유튜브에 다도(茶道)를 검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일로여행 중 들렀던 보성의 모 사찰에서 다도 예절을 배웠는데, 그때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게 뭘까, 했는데 유튜브에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다도를 검색하니 자연스레 ASMR로 이어졌습니다. 그날 절에서도 물을 따르고 차를 붓고, 그중에 도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홀렸던 것 같습니다.

 

요새는 그때처럼 ASMR을 찾아 듣진 않지만, 최소한 제가 소리에 예민하다는 사실은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각보다 더 민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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